순천과 대구를 잇다

오늘 순천대 10.19연구소 연구원들과 전남의 시민들이 경산코발트광산에 답사를 다녀갔다. 이분들은 작년에도 10월항쟁 답사를 위해 대구를 다녀가셨다. 순천, 여수, 광양, 구례까지. 연령대도 30대부터 70대까지. 부족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자주 오가야 한다는 말씀도 빼놓치 않으셨다.
10월항쟁, 보도연맹,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관련 답사 가이드를 맡게된 것은 김상숙 선생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작년 2학기 <대학원생을 위한 사회 연구 글쓰기> 수업에서 제출한 쪽글, ‘타자를 통해서 본 나의 공부’에서 김상숙 선생님과 인연을 썼다. (나의 공부에 영향을 준 5명을 통해 과목 수강 이유를 밝히는 글이었다. 김상숙 선생님 외에 노태맹, 이용식, 강윤정, 탁정아가 있었다.)
김상숙(1962~ )
경북대 생물학과 학사, 사회학과 석사, 박사. 1980년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였고, 이후 공장에 투신했다가 돌아와 사회운동을 하였다. 30대 후반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2007년 ‘지역과 젠더통제, 여성노동자들의 저항: 80년대 대구지역 섬유산업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2006년 ‘여성학의 이해’ 교수자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수업을 3~4번만 들어갔는데, B+을 받았다. 2014년 대구10월항쟁 위령제에서 만났는데, “천용길 아니냐”고 말을 건넸다. 수업을 거의 듣지 않은 덕분에 기억하고 있었고, <10월항쟁> 책 출간과 함께 가끔 교류하였다. 2015년 8월 학부 졸업 논문으로 ‘10월항쟁 대구의 기억과 제주4.3의 기억 운동 비교’를 쓰게 된 동기였다. 2021년 ‘경산-청도지역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구술채록 사업’에 연구보조자로 함께 했고, 2023년 ‘대구의 518-두레사건 구술자료 수집’에 연구보조자로 함께 했다. 지역 사회운동사 연구의 필요성을 늘 강조한 선배 연구자이다.
김상숙 선생님 사진은 어제(2026.6.12.)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 NGO센터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오셨을 때 담았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분들에게 다음 번에는 꼭 순천에서 찾아뵙겠다고 이야기드렸다. 고등학교, 대학 시절에는 남도답사, 여순답사로 여러 번 다녀왔는데 30대 이후에는 간 적이 없다.
나는 순천과 나름 어마어마한 인연이 있다. 시인을 꿈꾸던 2002년 9월 27일 서부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갔다. 순천대 주최 제2회 전국고교생 문예백일장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주제어가 ‘물’이었는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터라 ‘물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냈다.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주최 측이 마련한 답사가 이어졌다. 흥미로운 답사를 마치고 심사장에 돌아와 발표를 기다렸다. 심사장에는 <당신들의 천국>의 이청준 선생, <산문에 기대어>의 송수권 시인, <사평역에서>의 곽재구 시인이 앉아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운문부 장려상을 받았다. 돌아오면서 “이 길이 내 길인가봐”를 되내게 되었다. 이후에 한껏 부풀어서 여러 번의 백일장에 참여했고, 한 번의 입선과 또 한 번의 장려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백일장을 할때마다 날고 기는 글쟁이들을 마주하면서 빠르게 시인의 꿈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가끔 습작을 할 때면 순천만의 갈대밭과 14연대가 이동한 순천역 앞이 떠오른다.
이제는 허튼 꿈을 떠올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순천은 내게 몽글몽글한 때로는 삐쭉 솟아오르는 글쓰기를 떠오르게 하는 고향이다.
올해는 순천을 꼭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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